전문가의 정답과 당사자의 진심이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입주인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까?”라는 의문이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당사자를 위한 ‘정답’을 준비하게 된다. 영양가가 풍부한 식단, 규칙적인 신체 활동, 안정적인 주거 환경,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는 경제적 준비까지. 이 모든 것은 객관적인 지표로 보았을 때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현장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입주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전문가가 준비한 ‘가장 좋은 것’과 생각보다 자주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갈등한다.
최선보다 선호가 절실한 이유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땀 흘리며 걷는 시간보다 조용한 카페 창가에 앉아 보내는 한 시간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미래를 위해 지출을 줄이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상식보다, 지금 당장 손에 쥔 작은 간식 하나를 사는 소비에서 더 큰 존재의 위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외부자의 시선에서 이는 ‘나쁜 선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삶의 무거운 무게를 견디게 하는 마지막 보루일 수 있다.
사회복지는 바로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좋은 것’만을 정답이라며 강요하는 순간, 당사자와의 관계는 급격히 소원해진다. 당사자는 자신이 존중받기보다 통제당하고 있다는 감각을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지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의 ‘좋아함’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개입은 결국 일방적인 지시가 될 위험이 크다.
연결을 통한 변화의 시작
그래서 중요한 것은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인 결정이 아니다. 진짜 전문가의 역량은 이 상반된 두 세계를 어떻게 유연하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운동을 거부하는 이에게 무작정 보행을 권하기보다, 그가 평소 좋아하는 활동의 동선 안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설계하는 세밀함이 필요하다. 무절제한 소비를 무조건 억제하기보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보는 ‘자기 결정권’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사회복지는 단순히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기다려 주는 일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는다. 사람은 결코 머리로 이해되는 ‘가장 좋은 것’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열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진정한 전문성은 좋아하는 것을 지켜주는 인내에서 나온다
진정한 변화는 좋은 것을 반복해서 설명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당사자가 좋아하는 가치와 연결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좋은 것만 강조하는 지원은 생명력이 짧고, 좋아하는 것만 따르는 지원은 방향을 잃기 쉽다. 그 팽팽한 긴장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정답’을 주러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의 ‘진심’을 함께 지키러 가는 사람인가. 좋은 것을 권하기 전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들여다보는 인내야말로, 현장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따뜻한 전문성이다. 결국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전문가의 정답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 살아있는 작고 소박한 ‘좋아함’의 힘이기 때문이다.
